2008년 12월 6일 토요일

바울의 선교원리와 전략

바울의 선교원리와 전략
사도요 선교사로서 바울은 어떤 원리와 전략을 가지고 사역하였을까? 우리는 이런 질문에 관심을 가진다. 사도바울은 선교 여행을 떠날 때 미리 그의 여정을 계획하거나 교회를 설립할 전략적인 지점들을 선정하고 나서 그런 계획들을 실천에 옮기지 않았다. 선교전략이라는 개념을 ‘인간의 계획과 경험을 기초로 한 의도적이며 공식화된 인위적인 활동 계획’이라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바울은 전혀 선교원리나 전략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하심에 철저히 따르는 사역(활동)방식을 전략이라고 한다면 그는 훌륭한 선교 전략들을 활용한 선교전략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헌신을 최고의 선교원리와 전략으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마게도니아 선교를 시작한 이야기(행16:6-10)에서 생생하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성령의 인도하심을 얻기 위해서는 기도의 생활이 필연적이었을 것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고, 기도생활을 통해서 그는 하나님께서 보여 주시는 환상을 통해 새로운 선교활동의 장들을 찾기도 하고 준비하기도 하였다(행16:9,18:9, 22:18,23:11). 그 음성(인도하심)들이 성령의 뜻임을 믿고 순종하였던 것이다.
둘째, 바울은 복음의 진리는 고수하되 부차적인 관습적이며 문화적인 것이라고 판단되는 것은 기꺼이 양보 한다는 전략을 가지고 접근하였다. 이런 점이 오늘날 우리가 선교 현장에서 회심자들이 복음의 본질적인 내용만 아니라 부차적인 것들까지도 가르치고 따르게 하려는 우리들의 모습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바울은 복음에 관한 한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갈1:8-9). 라고 선언함으로써 복음에는 타협이나 양보가 있을 수 없음을 밝히 보여 주고 있다. 그 대신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복음 이외의 문화(관습)적인 면에 있어서는 관용적 원리를 적용하였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 아래 있는 것처럼, 약한 자에게는 약한 자처럼 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려고(고전9:19:23)했던 것이다.
셋째, 바울은 성령께서 가게 하신 지역에서 집중적 선교 사역을 행함으로 그 효율성을 높이려했다. 바울의 선교적 소명은 ‘이방인들에게’(행22:21)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은 세계의 모든 이방인들을 한꺼번에 복음으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아직 복음화 되지 않은 몇몇 지역에 초점을 맞추되 그 지역의 중심이 되는 도시들에 교회를 설립하였다. 회중을 많이 모으는데 힘을 쏟기보다는 교회와 일군들을 세우고 그들이 자립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을 때까지 그곳에 머물면서 사역을 하였다. 그리고 스스로 설 수 있다고 판단되면 다음 사역지 곧 아직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복음을 전하러 갔다. 이렇게 도시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는 그 주변지역에 복음의 빛을 비추는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는 언제나 새로운 선교 기지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담당하였다.
넷째, 선교방법으로는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을 통한 삶의 모범을 통해서도 복음을 전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로마서에서 그는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케 하기 위하여 나로 말미암아 말과 일이며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롬15:18). 고 함으로써 말과 더불어 행함이 복음 전파의 수단이 되었음을 보여 준다. 또 데살로니가전서 에서는 “너희는 ~~우리와 주를 본 받는 자 되었으니”(1:6)라고 함으로써 그들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직접 모범으로 보여 주므로 바울을 통해 주님을 알게 되었음을 보여 준다.
다섯째, 그는 혼자 선교 사역을 감당하지 않았다. 그가 가는 곳마다 성령께서 동역자들을 붙여주셨다. 바울은 그들을 양육하고 훈련하여 사람들과 함께 선교 사역에 참여하도록 하였다. 그의 동역자들은 '레위인 바나바, 어머니가 유대인인 디모데, 헬라인 디도, 유대인이 아닌 의사 누가, 회당 장이었던 소스데네,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 아볼로, 마가와 실라 등' 그 출신도 다양하였으며, 각계 각층에 퍼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많은 전도자들과 선교사들을 세우고 이끈 리더였다
여섯째, 그는 전략에 융통성을 가지고 있었다. 대상에 따라 다른 접근방법을 사용하였다. 그는 복음을 전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늘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복음을 증거할 기회를 찾았다. 회당에서, 시장 거리에서, 가정집이나 공회당에서, 심지어 감옥에서까지도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만들었고 그 상황과 대상에 맞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소식을 증거하였다. 아덴에서는 이교도 철학자들의 한 가운데 서서 그들의 문화와 종교에서 접촉점을 찾기도 하였다. 그들의 우상 숭배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고 오히려 그들의 종교성을 칭찬함으로 창조주 하나님과 복음을 전파할 기회로 삼은 것이었다(행17:22-31).
일곱째, 바울의 선교 전략은 삼자 원리를 적용하였다. 그가 세운 교회들은 ‘자치’, ‘자립’, ‘자전’하는 교회로 세워졌다. 바울이 세운 교회들은 스스로 자립하여 지역 복음화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어느 누구의 통제나 지시를 받지 않고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랐다. 바울 사도에 의해 세워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합력하여 맡겨진 은사에 따라 교회 일들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워진 초대 교회들은 재정적으로도 외부의 어떤 힘에 결코 의존하지 않았다.
여덟째, 바울은 선교를 위한 재정 정책은 자비량이었다. 그는 스스로 일함으로써 자신과 동료들의 필요를 감당하였고, 새롭게 세워진 교회들도 재정적으로 자립하도록 하였다. 또한 더 나아가 가난하고 어려운 성도들이나 교회들의 궁핍을 외면하지 않고 돕도록 했다. 그러나 그는 또한 스스로도 교회가 보내 주는 선물을 거절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받아 사용하였다(빌4:15-16). 이 원리도 오늘날 선교에서 적용되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의 선교 사역에 있어서 특징적인 요소는 십자가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었다. 바울 선교의 전 생애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고난으로 특징 지을 수 있다. 주님께서 그를 사도로 부르실 때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행9:16)고 하심으로써 그의 사도로서 겪어야할 삶의 고난을 예고해 주셨다. 그리스도를 통해 얻은 그 자유는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종이 되는 빚진 자로서의 자유였기 때문이다(고전9:19-23).
그리고 선교 즉 구원사역을 감당할 때 이 세상과 어둠의 주관자인 사단의 방해와 공격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사단을 정복하셨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의 날이 오기까지 그들은 여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역을 방해하기 위해 믿음의 공동체 안에 온갖 술수와 계책을 쏟아놓는다. 선교에 있어서 세상과 이 세상을 주관하는 자들과의 갈등과 분쟁은 필연적이다.(마10:34) 이들은 복음을 거부 할뿐만 아니라 복음을 방해하기 때문에 이들과의 투쟁은 불가피한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세상과 주관자들을 십자가의 사랑으로 이기어내었다. 그래서 그는 그 많은 고난과 환란 가운데에서도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고 하면서 그 고난을 복음 전하는 자의 특권으로 여겼다. 이러한 원리 또한 오늘이라고 변할 수는 없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역을 위하여 학자적 두뇌와 열정, 철저한 헌신과 순종으로 따르는 바울을 택하여 쓰셨다. 좋은 자질을 골고루 갖춘 바울은 그분의 부르심을 따라 순종함으로써 인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룬 것이다. 물론 바울이 선교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을 주지는 않았다. 또한 그런 시도를 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서신들을 써서 보낼 때에도 그것을 선교사역의 원리를 가르치기 위해 쓴 것이 아니었다. 교회의 형편과 사정을 듣고 기도하며 성령의 감동하심을 따라 서신들을 써서 보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의 선교를 통하여 배운 여러 가지 통찰력을 가지고 오늘날 현대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문제와 선교 과제를 해결하는데 필요한 지침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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